한겨레] 최근 마무리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과정에서, 국내의 미국 투자자 권리 보호 장치는 그대로 둔 채 미국에서 한국 투자자의 권리만 제한하는 ‘불평등 규정’이 협정문 서문에 새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2일 공개된 한-미 자유무역협정 최종 협정문의 서문을 보면, 5월25일 공개된 1차 협정문과 달리 “미국과 같이 국내법의 투자자 보호 수준이 협정의 규정과 같거나 나은 경우, 외국(한국) 투자자는 미국인보다 투자 보호에 대한 권리를 더 받지 못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규정이 새로 포함됐다.
자유무역협정의 내국민 대우란 외국 투자자에게 자국 투자자와 동등한 대우를 해주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의 권리를 부여받는 것도 인정하는 것인데, 서문의 새 규정은 한국 투자자가 미국 투자자 이상의 권리를 누리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협정 발효에 따라 상대국 투자자에게 과도한 혜택이 생겨 역차별 시비가 불거질 경우 우리 정부가 역차별 해소 정책을 내놓으면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제소 대상이 되지만, 미국 정부는 ‘역차별 금지’가 명시된 서문 규정 덕분에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외교통상부의 한 간부는 “재협상 때 ‘미국에만 해당하는 규정을 넣는 것은 문제’라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미국 협상단이 자국 의회를 설득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하다고 해 들어줬다”며 “협정문 투자 챕터에 내국민 대우의 실체적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만큼, 서문 규정은 투자 관련 분쟁 때 모호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선언적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송기호 통상 전문 변호사는 “협정문 서문은 헌법으로 치면 전문과 같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여러 분쟁 판례에서도 서문을 선언적 의미로만 해석하지 않고 있다”며 “결국 미국 투자자는 한국에서 규제를 덜 받거나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반면, 미국에서 한국 투자자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제한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체결 뒤 캐나다 기업 등이 미국 주정부들을 제소하는 등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미국 주권 및 사법체계와 충돌하자, 민주당 주도로 통상법을 고쳐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미국 투자자보다 우대할 수 없도록 했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내국민대우=자유무역협정 또는 투자협정을 맺은 나라의 정부나 공공기관들은 상대국 기업이나 투자자를, 자국 기업·투자자 등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서비스와 투자 관련 협상에선 일단 이 원칙을 서로 의무화한 뒤, 예외로 해야 할 분야를 ‘유보 항목’으로 올려 최종 협정문안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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